☆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비온 뒤의 햇빛속에서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프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때는
말을 접어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겠지.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별들도 안다.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을 볼 수 없을때
나는 잠시 네 가슴에 내려앉아 하늘 냄새를 파닥
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는 고운 새가 되고 싶다.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나무야, 네 눈빛만 보아도 나는 행복해 쓰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그토록 많은 잎과 열매를
묵묵히 키워내는 너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 살고 싶어져, 모든 슬픔을 잊게
돼 바람에 흔들리는 네 소리만 들어도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모든 이를 골고루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는 너, 우리엄마처럼 왠만한 괴로움은
내식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네 깊은
속마음을 알것 같단 말야."
장미꽃 사이사이에 하얀 점처럼 어우러져 있는 안개꽃의 아름다움,
자기의 개성도 잃지 않으면서
고운 장미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의 겸허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내 남은 날들을 아낌없이 새로운 노래로 봉헌하게 하소서.
나무 작은 노래 밖에 부를 줄 모르는 저이오나 당신 안에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지금 이시간도 제가 살아있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좀 더 감사할 이유, 기뻐할 이유를 찾아 내지 못하고
무심히 맛없이 살아왔던 저를 용서하소서.
오늘도 당신 앞에 한 그루 순명의 나무이고자 합니다.
다시 크는 나무 이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혼자만의 비밀서랍을 갖고 즐거워 했던 것처럼
내 마음 안에도 작은 서랍이 있다.
사랑과 우정의 기도, 내 나름대로의 좌우명과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모아 둔
비밀 서랍, 그래서 누가 나를 좀 힘들 게 하더라도
지혜를 꺼내 최선을 다하면 슬프지 않다.
큰 수술뒤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환자가 회복실에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고 푸른 하늘을 보고 새삼 감격스러워 하듯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살아 가는 모든 날들이 나에겐 새날이요. 보물로 꿰어야할 새시간이요.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임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늘 할 말이 많아 잠들지 못하는 바다처럼 오늘도 다시 깨어나라고
멈추지 말고 흘러야 한다고 새해는 파도를 철썩이며 오나보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음을 믿는다.
졸음이 막 쏟아 질 때 들어 가 누르는 달콤한
잠의 나라에서 처럼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아무말 안해도 편안하고 넉넉하구나.
모든 시름을 잊고 행복할 뿐이구나.
시냇물에 잠긴 하얀 조각돌 처럼 깨끗하고 단단하게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귀할 말,
사랑의 말을 막상 입으로 뱉고 나면 왠지 쓸쓸하다.
처음의 고운 빛깔이 조금은 바랜 것 같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공연히 후회도 해본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모든 이가 기다리고
애태우는 사랑의 말 이 말은 가장 흔하고 귀하면서도 강한 힘을 지녔다.
가을엔 바람도 하늘 빛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 받는 말들도 기도의 말들도 모두 너무
투명해서 두려운 가을 빛이다.
들국화와 억새풀이 바람속에 그리움을 풀어 해친 언덕 길에서
우리 모두 말을 아끼며 깊어지고 싶다.
가을하늘에 조용히 떠다니는 한 조각의 구름이고 싶다.
우리가 한그루 우정의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한결같은 마음의 성실성과 참을성, 사랑의 노력이 필요하다.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아직도 화해가 안되고,
용서가 힘든 친구가 있다면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전에는 가까웠다가 어느새 멀어지고 서먹해진 친구가 있다
면 지금이라도 미루지 말고 어떤사랑의 표현을 하라.
가을 열매처럼 잘 익은 마음. 자신을
이겨내는 겸허함과 기도의 마음으로...!
- 이해인 수녀님의 글 -